“오늘이 바로 마지막 날이네!”
초등학교 6학년이던 1962년, 담임 선생님께서는 수업 중에 늘 일간 신문의 중요 내용을 읽어 주셨습니다. 그해 10월 소련이 미국 본토를 겨냥해 쿠바에 핵미사일 기지 설치를 비리에 추진했고, 이를 포착한 미국과 소련 사이에 일촉즉발의 위기가 고조되던 때습니다.
“지금 핵미사일을 실은 소련의 군함들이 쿠바로 향해 가고 있는데 해상 봉쇄령을 내린 미국 해군과 맞부딪혀서 오늘 밤에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지 모른단다.”
선생님의 말에 깜짝 놀라 방과 후에 십리 길이나 되는 집으로 한달음에 뛰어갔습니다. “엄마, 큰일 났어요! 오늘 밤에 핵전쟁이 일어나서 지구가 멸망할지 모른대요.”
선생님께 들은 얘기를 전하자 집안 분위기는 심각해졌고 결국 식구들은 저녁기도를 바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때 어머님의 혼잣말이 들렸습니다.
“아니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고? 그래, 요비 말이 맞네! 오늘이 바로 마지막 날이야!”
다음날 새벽, 눈을 뜨자마자 밖으로 뛰어나갔습니다. 밤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짙은 안개와 침묵이 흐르는 고향 마을 길을 홀로 걸으며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경이로움을 느꼈습니다.
인류 공멸의 위기 앞에서 미국과 소련이 극적으로 타협했다는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안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어머님의 ‘오늘이 바로 마지막 날이네!’라는 말은 성경에서 계시되는 하느님의 시간(Kairos)을 관통하고 있음을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더 절감하게 됩니다. 카이로스는 본래 ‘결정적인 것’, ‘본질적인 시점’을 뜻하는데 종말론적으로 마지막 때인 하느님에게 온전히 속한 ‘하느님의 시간’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지녀야 할 ‘시간’의 신앙적인 의미를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임의 날은 나날이 아닌 다만 ‘오늘!’, 그 오늘은 내일로 옮지도 아니하고, 어제 뒤에 이어지지도 않은 날이다. 임의 오늘은 곧 ‘원!’”이라고 갈파하습니다.(고백록 11권, 13장) 그런 면에서 교회의 전례력, 전례의 시간은 이 덧없는 인간의 세월 안에 길들여지기 쉬운 우리네 인생에 하느님의 원한 시간이 개입해 계심을 일깨워 주는 것입니다.
대림 1주일인 오늘은 전례력으로 새해를 시작하는 날입니다. 오늘이라는 시간을 허락하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 며, 그리스도의 뜻에 더욱 맞갖은 삶을 살도록 다짐하는 기다림의 시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당신의 모든 성도들과 함께 재림하실 때, 여러분이 하느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흠 없이 거룩한 사람으로 나설 수 있게 되기를 빕니다.”(1테살 3,13)
<구요비 욥 주교 | 서울대교구 보좌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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