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와 사랑의 왕이신 예수님
사람은 죽어야 진정한 가치가 나타난다고 합니다. 2014년 성인품에 오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게는 가톨릭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훌륭한 교황이라는 찬사가 늘 따라붙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선종한 후 불교와 이슬람 사원뿐 아니라 유다인 회당에서도 그를 추도한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지구촌이 그분의 죽음을 아쉬워했던 이유는 항상 인종과 종교를 초월해서 평화와 공존, 용서와 화해를 선포했기 때문입니다. 말년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세상을 떠나기 몇 해 전 중동 성지를 방문하셨는데, 구부정한 어깨에 보기에도 안쓰러운 걸음으로 분쟁의 땅 곳곳을 찾아가셨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벤구리온 공항에 도착한 교황님은 3개의 그릇에 담긴 흙에 입을 맞추셨습니다. 이 그릇들은 각각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 유다교 신자의 자녀 3명이 들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3개의 종교가 화합하여 발전하기를 기원하는 희망을 담아 각각의 흙에 입을 맞추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통곡의 벽에서는 유다인 랍비가 하는 양식대로 기도하셨습니다. 종교는 다른 종교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모두가 함께 공존해야 한다고 강조하신 것입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삶은 항상 지도자가 어떤 자세와 행동을 가져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셨습니다.
오늘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을 지내는 교회는 세상의 통치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왕으로 모십니다. 예수님은 권력으로 국민들을 통치하는 다른 왕들과는 근본적으로 달랐습니다. 보통 통치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립니다. 예수님은 가장 비천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진정한 왕으로 세상에 우뚝 서신 이유는 사랑의 완전한 실천가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법은 한마디로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어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분께서 가르치시는 모든 내용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과 용서와 평화 그리고 겸손이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세례를 받을 때 그리스도의 왕직을 받았습니다. 이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 왕의 모범을 따르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의 왕직은 한마디로 봉사직입니다. 예수님 자신도 그러한 삶을 사셨고 제자들에게 하신 가르침에서도 마찬가지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진실로 왕으로 섬긴다면, 우리는 예수님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모든 것을 함께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당신 스스로 사랑의 원칙을 철저히 지키시면서 마침내는 제자들의 발까지 씻겨주는 가장 겸손한 왕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들도 예수님처럼 베풀고 용서하며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왕직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인들은 가장 낮은 곳에서 겸손하고 사랑을 실천하여 가장 높은 곳에서 광을 받는 이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허영엽 마티아 신부 | 서울대교구 홍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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