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뜻을 따르는 신앙인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의 저서 『향연』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생겨난 것이 신들의 질투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본래 남자와 여자는 서로 등을 맞댄 모습으로 한 몸체를 이루었는데, 신들이 자신들에게 반항하는 인간들을 약화시키려고 반으로 나누었고, 그래서 남자와 여자가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창세기 2장에 따르면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깊은 배려에서 남녀가 창조됩니다. 하느님은 당신이 창조하신 아담이 알맞은 협력자를 찾지 못하자 그의 갈빗대로 하와를 지어주십니다.(제1독서) 아담은 하와를 큰 기쁨으로 맞이하면서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라고 외칩니다. 아담의 탄성은 남녀가 같은 본질에서 나온 존재임을 뜻합니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 구분은 되지만, 모두 하느님의 모상(창세 1,27)으로서 동등한 품위를 지니고 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이스라엘의 역사는 창세기의 가르침과는 달리 시간이 흐를수록 여자를 업신여겼습니다. 남편은 사소한 이유로도 이혼장을 써 주고 아내를 내쫓을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런 관습은 사람들의 마음이 완고해서 생겨난 악습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창세기 2장의 말씀을 들어 남편이 아내를 버리는 것을 금지하십니다. “그들은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이 말씀에는 여성 보호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당시 사회에서 여성은 경제적 자립이 불가능했기에 평생 남자에게 의존해서 살아야 했습니다. 자랄 때에는 아버지의 보호를 받으면서, 결혼하면 남편에게 종속되었습니다. 그런 사회에서 남편이 아내를 버린다면 그 여인은 생계유지를 위해 걸인이 되던지 창녀가 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아내를 버려서는 안 된다는 예수님의 말씀에는 사회적 약자인 여성을 인간으로 대접하라는 여권 옹호의 뜻이 담겨있습니다. 예수님은 당시에서 또 다른 사회적 약자인 어린이도 옹호해주십니다. 제자들이 냉대했던 어린이들을 불러다가 축복해주시고, 그들을 오히려 어른들의 모범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어린이가 부모를 무조건 받아들이듯이 너희들도 하느님의 나라를 그렇게 받아들여야 한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위해 목숨을 내놓으셨기에(제2독 서), 그분께는 남녀 모두가 소중한 존재입니다. 남성우월주의나 여성비하도, 그에 대한 반발로 남성을 적으로 여기는 것도 예수님의 뜻이 아닙니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의 고유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협력하는 것이 그분의 뜻입니다. 또한 어떤 이유에서든 어린이를 짐스럽게 여기며 배척하는 것도 예수님의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어린이를 귀찮게 여겼던 제자들을 언짢아하셨습니다. 동물은 애지중지하면서 아이는 낳지 않으려는 오늘날의 세태 또한 언짢아하시지 않을까요? 세상의 흐름이 아니라 예수님의 뜻을 받드는 이들이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손희송 베네딕토 주교
서울대교구 총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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