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에 실천이 없으면
신학교에 입학할 때, 제가 롤모델로 삼았던 분은 성 막시밀리아노 콜베 신부님입니다. 폴란드 사람인 콜베 신부님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여 점령했 을 때, 나치 정권의 박해를 받던 유대인들을 보호하고 도와주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결국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 형무소에 수감됩니다. 어느 날, 형무소에서 한 사람이 감시를 뚫고 탈출을 하자, 간수들은 그 보복으로 수감자들 중 열 명을 무작위로 지목하여 처형하기로 합니다. 이때, 지목된 한 사람이 자신에게는 가족이 있다며 살려달라고 울부짖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이 광경을 지켜보던 콜베 신부님은 선뜻 그를 대신하여 자신이 죽겠노라며 자원하여 감옥에 갇힙니다. 결국 2주 이상을 감방에서 극심한 굶주림과 목마름에 시달리면서도 주님을 찬미하며 동료 수감자들을 격려하던 신부님은, 마침내는 독극물 주사로 주님의 품에 안기게 됩니다.
낡고 더러운 죄수복을 입고 감방 안에 초라하게 웅크린 신부님의 모습을 바라봅니다. 가슴팍에 붙은 수인 번호 16670만이 그의 신원을 희미하게 드러낼 뿐, 수도복도 십자가도 기도서나 성경도 그에게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어떤 화려한 제의를 갖춰 입은 사제보다도 더 진실된 주님의 사제임을, 그리고 참다운 그리스도인임을 드러내는 명확한 표징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그의 사랑의 행위입니다. 스승이신 예수님을 따라 이웃을 위해 기쁘게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으며 자신의 삶을 주님께 봉헌한 콜베 신부님의 모범은, 참다운 신앙이란 결국 말이나 어떤 외적인 표지가 아니라 삶의 실천으로 드러나야 하는 것임을 웅변적으로 보여줍니다. 야고보 사도께서 오늘 제 2독서에서 “믿음에 실천이 없으면 그러한 믿음은 죽은 것”이라며 “나는 실천으로 나의 믿음을 보여 주겠습니다”라고 선언하시듯 말입니다.
콜베 신부님을 바라보며 신학교에 갓 입학했을 때에는, 저도 나중에 사제품만 받고 나면 저절로 그렇게 신앙적으로 완성되겠거니 막연하게 생각했었는데, 막상 사제가 되고 보니 매일매일이 새로운 출발선임을 깨닫습니다. 제가 사제임을 증거하는 것은 신학교 졸업장도 성직자 신분증도 아니고,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라는 주님의 말씀을 일상의 매 순간에 얼마나 충실히 실천하는지의 여부이기 때문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임을 증거하는 것은 단순한 세례증명서가 아니라 우리의 기도와 희생과 자비의 구체적인 실천입니다.
믿음에 실천이 없으면 그 믿음은 죽은 것이라는 야고보 사도의 말씀을 되새기며, 우리는 과연 말로써가 아니라 행위로써 우리의 신앙을 증거하고 있는지, 살아있는 믿음으로 주님께 다가서고 있는지 차분히 돌아보는 오늘이 되었으면 합니다. —최규하 다니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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