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서 나를 이끌어 주신다’는 확신은
믿는 우리에게 있어서 본능적이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요한복음 6장에 나오는 빵에 대한 말씀을 계속 들려주고 있습니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먹어라.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줄 내 몸이다.” 성체성사를 거행하시는 예수님 당신을 염두에 둔 말씀입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라는 말씀 때문에 술렁거리는 군중들에게 “수군거리지 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라고 일침을 놓으십니다. 그리고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하고 천명하십니다.
“세상에 생명을 주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
오래전에 이 빵 때문에 마음고생을 하며 애를 썼던 때가 기억납니다. 1989년 10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을 모시고 서울 제44차 세계성체대회를 거행했을 때의 일입니다. 거룩한 이 행사를 위해 각 본당에서는 내적 준비를 해야 했습니다. 몇 개월 전 신수동 본당에 부임한 저도 이에 부응하기 위해, 봄 사순절에 100명씩 세 차례에 걸쳐 정동 프란치스코 피정의 집에서 1박 2일 피정을 계획하였고, 거기에 제가 해야 할 강의를 매번 3시간씩 넣었습니다. 열정에 가득 찬 젊은 본당 신부였던 저는 이 강의를 위해 두 달 전부터 준비를 해 나갔는데, 피정을 약 열흘 앞둔 시점에서도 전혀 준비가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젊기 때문에 힘은 넘쳤는데 내적인 지식이 그만큼 따라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포기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유혹에 시달리던 어느 날 밤 꿈을 꿨습니다. 지금도 그 꿈이 생생합니다. 높이 오르는 계단이 있어 오르다 보니 그 계단은 구름 속을 뚫고 지나갑니다. 계단 맨 위에 오른 저는 구름을 내려다봅니다. 그 순간 보이는 구름 속에서 까만 점들이 무수히 나타나더니 그 점들이 하나의 선으로 이어지면서 둥그런 원을 그립니다. 그리고 그 원이 구름 속에 살짝 숨더니 그 원 안에서 아름다운 붉은 빛이 쫙 비추는 것입니다. 꿈속에서 저는 “야! 성체다, 성체다!” 하고 외쳤습니다. 꿈을 깬 저는 뭐가 뭔지 모르지만 일단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 후 또다시 포기하고 싶을 때면 그 꿈을 상기하게 되고 그러면 뭔가 힘이 생기는 것 같았습니다. 아니 힘이 생겼습니다. 여하튼 고진감래 끝에 피정은 계획대로 끝났습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라는 말씀이 되새겨집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이끌어 주신다’는 확신은 믿는 우리에게 있어서 본능적이어야 합니다. 오직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늘 지금 이루고자 하는 것이 하느님의 공의로우심에 부합한 것인가를 분별하는 일입니다. 그 분별이 옳다면, 그 안에는 늘 희망이 살아 움직입니다. 이 희망은 결코 나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 하느님께서 나를 이끌어 주시리라는 본능 때문입니다. 사실 이는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약속입니다. 이 약속을 가슴에 품고 잊지 맙시다.
홍성만 미카엘 신부 / 지속적인 성체조배회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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