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떠날 때, 아무 것도 가져가지 말라
예수님은 당신 제자들을 얼마나 사랑하셨던지, 최후 만찬 때에 몸소 허리를 굽혀 그들의 더러운 발을 다정스레 씻어주십니다. 이 부분을 묘사하며 요한 복음은,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요한 13,1)고 전합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모습은 이런 사랑 가득한 모습과는 조금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복음을 선포하라고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라고 명하시기 때문입니다. 사실 당신 제자들이 이제 막 떠나려고 하는 이 길이 얼마나 험난한 것인지 예수님은 모르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마태 10,16)라며 세상에 파견되는 당신 제자들에 대한 깊은 염려를 드러내기도 하십니다. 그렇다면 대체 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길을 떠날 때에 아무것도 가져가지 말라고 하시는 것일까요? 그렇게 염려스럽다면, 오히려 그들이 길을 떠나기 전에 이것저것 꼼꼼하게 짐을 챙겨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저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예쁜 조카가 있는데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친구가 문밖을 나설 때면, 형수님과 형님은 유모차부터 해서 기저귀와 여벌 옷, 이유식과 간식 등 온갖 짐을 바리바리 챙기곤 하더군요. 하지만 커다란 가방에 빈틈없이 들어찬 이 무거운 짐을 조카에게 내밀며 “이건 네 짐이니까 네가 들어!”라고 이야기하진 않습니다. 꼼꼼하게 짐을 챙겨 들고 다니는 것은 형님과 형수님의 몫이고, 어린 조카는 그저 사랑스러운 웃음을 흘리며 해맑게 발걸음을 옮길 뿐입니다.
문밖을 나서는 자녀에게 부모님이 ‘식량도 여벌 옷도 가져가지 말라’고 이야기한다면, 이는 매정함의 발로가 아니라 오히려 지극한 사랑의 돌봄을 약속하는 것입니다. “얘야, 내가 너와 함께 하며 네가 필요한 것들을 챙겨주고 마련해줄 테니 걱정 말렴!”하고 안심시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같은 마음이 아니었을까요. 누구보다 사랑했던 제자들을 파견하는 길입니다. 이리떼 가운데 보내는 것 같아 마음이 짠한데, 마치 유배 보내듯 빈털터리로 내쫓을 리가 없습니다. 아무것도 지니지 말고 떠나라 하심은, “필요한 것은 아버지께서 함께하시며 다 마련하실 터이니, 너희는 그저 그분을 믿고 복음 선포에 전념하여라”라는 말씀이지 않을까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한 갖가지 현실적인 염려에서 완전히 해방될 수는 없겠지만, 온갖 걱정에 파묻혀 불안해하며 하느님을 잊고 지낼 것인지, 아니면 반대로 아버지 하느님을 신뢰하는 마음으로 담대하게 발걸음을 내디딜 것인지는 우리가 택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고 찾지 마라. 염려하지 마라. 오히려 너희는 그분의 나라를 찾아라. 그러면 이것들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루카 12,29.31)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마음에 머무르는 오늘이 되었으면 합니다.
최규하 다니엘 신부 /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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