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보좌신부 시절 매달 다니는 봉성체 환자 중에 특별한 분이 계셨습니다. 제가 그분을 기억하는 이유는 중학교에 다니는 어린 딸이 유일한 가족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갑자기 중풍이 와 거동은 물론 말도 거의 못 하고, 한두 평 남짓한 움막 같은 집에 혼자 누워서 지냈습니다. 하루 세끼 으깬 감자를 물과 함께 먹으며 10년 가까이 연명하고 있었습니다. 학교에 다니는 딸은 평상시에는 만나지 못했지만 방학 때면 항상 아버지 곁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얼마 후 저는 독일 유학을 가게 됐고, 제 교리반에서 교리 공부를 하셨던 의사 선생님에게 그 부녀를 돌봐주십사 부탁을 해놓았습니다. 딸아이의 고등학교 진학과, 가끔 그 집을 방문해서 환자를 돌봐주시고 가능하다면 요양 시설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단단히 부탁드렸습니다. 그리고 몇 년이 흘렀습니다. 한국에 돌아와 그 선생님을 만났을 때 그 부녀의 소식을 여쭈었습니다.
“신부님, 그 어린 딸이 아주 똑똑하고 대단한 아이예요. 좋은 상업고등학교를 들어가 졸업 후 바로 취직을 했어요. 그리고 좋은 요양원 자리가 나서 환자를 거기로 모시려고 했는데 안 된다는 거예요.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아무리 어려워도 자신이 모시겠다는 거예요. 스무 살도 안 된 어린 소녀가 너무 단호해서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병든 아버지를 끝까지 모시겠다는 어린 소녀, 말 한마디 부탁으로 몇 년 동안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셨던 그 선생님, 모두 기적과 같은 분들이었습니다. 가끔은 궁금합니다. 지금은 40대 중반이 넘었을 그 소녀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오늘 복음에서 바르티매오라는 눈먼 거지가 예리코의 길가에 앉아 구걸하다가 예수님을 만나 시력을 되찾습니다. 그는 나사렛 사람 예수님이라는 소리를 듣고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용감하게 큰소리로 외칩니다. 그는 앞을 못 보는 처지였지만 그 누구보다 예수님을 바로 알아보았던 것입니다. 바르티매오는 우리 신앙인에게 귀감이 되는 인물입니다. 우리도 어떤 의미에서는 눈이 먼 소경입니다. 육체적으로 결함이 없더라도 영적인 면에서는 소경인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가는 곳에 우리의 시선이 가기 마련입니다. 본다는 것은 단순히 눈으로 보는 것을 넘어서, 깨닫고 이해한다는 것도 의미합니다. 눈을 뜨고 있지만 우리의 시선은 엉뚱한 곳을 바라볼 수도 있습니다. 특히 우리의 마음이 욕심이나 탐욕으로 가득 차 있다면 더 그럴 것입니다. 눈은 마음의 등불이라 했습니다. 마음을 잘 닦아야 잘 볼 수 있다는 이야기도 됩니다. 또한 어떤 것들은 오히려 눈을 감아야 더 잘 볼 수 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께 우리의 부족함을 고백하며 다시 바르게 볼 수 있도록 간청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 우리도 소경입니다.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허영엽 마티아 신부 / 서울대교구 홍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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