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체, 참 생명의 양식
예수님께서 “내가 줄 빵은 나의 살”이라며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 말씀이 당시의 군중들에게 얼마나 충격적이었을지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습니다. 문자 그대로 해석하자면 당신을 죽여 그 인육을 섭취하라는 것인데, 이 얼마나 기괴하고 잔인한 말씀인가요. 하지만 예수님의 이 말씀이 끔찍하게만 들린다면, 이는 예수님의 ‘빵’을 영적인 차원이 아니라 단지 육적인 차원에서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몸인 빵은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라는 점에서 과거 하느님께서 광야에서 헤매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려주셨던 ‘만나’와도 비슷하지만, 만나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일시적인 육체적 배부름만을 주었던 것과는 달리, 예수님의 몸은 당신을 믿는 이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영혼의 양식입니다. 따라서 성체와 성혈을 모심으로써 우리는 식인(食人)을 하는 것이 아니라, 빵과 포도주의 외형 안에 신비롭게 현존하시는 예수님과 온전히 일치하여 그분의 영원한 생명을 나누어 받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오늘 복음에서,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성체를 모심으로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게 되는 것이라면, 성체를 모신 우리가 자신의 영혼을 온갖 죄로 더럽히고 상처 입힐 때 이는 곧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 되지 않을까요.
이런 맥락에서, 얼마 전 우리 가톨릭 신자들은 물론 대다수의 양식 있는 이들을 큰 충격에 빠뜨렸던 성체 훼손 사건을, 우리는 분노와 단죄보다는 통렬한 자성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몸인 성체를 불태우고 그 위에 낙서하여 공개적으로 조롱한 그 행위가 참으로 가슴 아프지만, 생각해보십시오. 예수님은 바로 그렇게 우리 인간들에게 조롱받고 박해받으며 결국에는 당신의 목숨을 내놓음으로써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닌가요. 십자가 위에서도 당신을 못 박았던 이들을 용서해주시기를 아버지께 청하셨던 예수님은, 이 참담한 성체 훼손 사건을 통해서도 우리가 분열되어 서로를 단죄하고 누군가에게 분노를 쏟아내기 보다, 오히려 이를 통해 우리가 과연 성체성사의 신비를 우리 자신의 삶으로 충실히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기를 원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거룩한 성체를 모시고도 일상에서 온갖 거짓말과 비방, 게으름과 탐욕, 이기심과 음행 등의 죄로 자신의 영혼을 물들여 그 안에 머무르시는 예수님을 욕되게 한다면, 고귀한 성체를 모독하고도 그 잘못을 깨닫지 못하는 그 불쌍한 영혼에 비해 과연 얼마나 더 의롭다 할 수 있을까요.
참된 생명의 양식인 성체를, 우리는 단지 입으로만 영할 것이 아니라 영혼 깊숙이 받아 모셔, 이를 통해 주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우리 또한 그분 안에 충실히 머무르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최규하 다니엘 신부 /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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