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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글] 코헬렛---안소근 수녀
글쓴이 : 사무실 날짜 : 16-12-17 13:10 조회 : 736 추천 : 0
스무 살 젊은이가 코헬렛을 이해하기는 어려울지 모릅니다. 열 살 어린이라면 아무리 설명해 주어도 아마 공감에 이르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환갑이 지나고 칠순이 지나면 좋아지는 책이 코헬렛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이 썼다고 전해지는 여러 책 가운데서도 코헬렛은 솔로몬이 노년에 썼다고 하는 것일까요? 코헬렛에는 산전수전을 다 겪은 현인의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욥과 코헬렛은 서로 대비되면서도 사실은 많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욥은 자신이 누리던 복을 다 잃었을 때에 이 세상의 질서에 대해, 하느님의 정의에 대해 항변했습니다. 반면 코헬렛은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은 모두 누려 보았습니다. 코헬렛 역시 솔로몬을 저자로 내세우고 있는데, 실제 저자가 솔로몬인 것은 아니지만, 이 저자는 온 세상을 돌아다니며 많은 업적도 이루었고 누구보다 뛰어난 지혜도 깨달았고 많은 부를 모으기도 했으며 그 어느 것도 잃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는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코헬 1,2; 12,8)라는 결론에 도달하고 맙니다. 코헬렛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이지요. 욥과 같은 불행을 당하지 않았어도, 현세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얻었다 하더라도 결국 인간은 비슷한 결론에 도달하게 마련인 모양입니다.

코헬렛이 모든 것이 허무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애쓰고 수고한 사람에게 그대로 그 보람이 돌아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투자에 대해 확실하게 열 배의 수익이 있다면 사람들은 정말 빚을 얻어서라도 투자를 할 것입니다. 힘이 드는 일이라 하더라도, 좋은 결과를 얻을 것이 명백하다면 수고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노력의 결과가 확실치 않다면? 아니, 이득이 없음이 확실하다면? 그렇다면 작은 수고조차 하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온 세상을 다니며 많은 경험을 쌓아 본 코헬렛은, 태양 아래에서 애쓰는 모든 일이 바람을 잡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수고하며 애쓰는 것에 대해 그만큼의 이득이 있을 것인지 알 수 없다는 말입니다. 지혜가 있으면 어리석은 것보다는 낫겠지만, 그나마 죽으면 모든 것이 사라지고 맙니다. 죽음, 이것이 코헬렛에게는 넘어설 수 없는 장벽이었습니다. 잠언에서와 마찬가지로 코헬렛에게도 내세에 대한 희망은 아직 뚜렷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평생 무엇인가 이루려고 노력을 하고 또 실제로 무엇을 이룬다 해도 그것은 어느 순간 나에게 아무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코헬렛은 “삶을 싫어하게 되었다”고까지 말합니다(2,17). 욥과 같은 고통 때문에 삶을 혐오하는 것이 아니라, 지상의 행복을 최고도로 누리고 있으면서도 그 모든 것이 헛되이 사라져 갈 것임을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코헬렛은 놀랍게도 우리에게 인생을 즐기라고 말합니다. 즐겁게 음식을 먹으며 즐기고, 사랑하는 아내와 행복하게 살고, 젊었을 때는 젊음을 즐기라고 초대합니다. 모두 현세적이고 일시적인 작은 행복들입니다. 그 모든 것이 사라져 갈 것임을 알면서도 그것을 즐기라고 말합니다. 그는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 천국의 끝없는 행복에 대해서 말하지 않습니다.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그가 알 수 있는 영역 밖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코헬렛은 누구보다도 인간의 한계를 잘 알았던 사람입니다. 임금의 권력을 갖고 있고 엄청난 보화를 갖고 있고 뛰어난 지혜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인간은 유한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 코헬렛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오늘 우리에게 주어지는 작은 행복들을 즐기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덧없는 인생에 주어진 하느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코헬렛은 이 즐거움이 영원한 가치, 최고의 가치라고 믿지 않습니다. 그저, 그것이 지상에서 인간에게 허락된 몫이라고 알기에 영원하지 않은 그 즐거움이 사라지기 전에 그 즐거움을 누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욥기와 코헬렛은 비슷한 단계의 신학을 보여 줍니다. 여기에서 인간의 지혜는 한계에 부딪힙니다. 잠언에서는 이 세상의 질서를 말했고 인간이 어느 정도는 그 질서를 파악할 수 있다는 믿음을 전제하고 있었지만, 욥기와 코헬렛은 인간이 알 수 있는 영역보다는 알 수 없는 영역을 바라보며 인간의 한계를 절감합니다.

그리고 욥기에서와 마찬가지로 코헬렛은, 인간 앞에 놓인 벽 앞에서 믿음을 선택합니다. 벽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코헬렛은 자신에게 알도록 허락된 그 영역 너머로 손을 내뻗으려 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 위에 있으니”(5,1). 코헬렛은, 인간이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어 그에게는 인생이 온통 고생처럼 보일지라도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제때에 아름답도록 만드셨다”(3,11)고 믿습니다. 인간이 그 하느님의 영원하신 계획을 깨달을 수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코헬렛은 그런 믿음으로 자신이 파악할 수 없는 영역은 하느님께 맡기고 그분께서 주시는 작은 즐거움들에서 행복을 찾습니다.

지상과 천상, 현세와 내세의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의 믿음이 코헬렛의 믿음보다 더 가치 있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요? 인간 지혜의 한계를 인정하기에 “책을 많이 만들어 내는 일에는 끝이 없고 공부를 많이 하는 것은 몸을 고달프게 한다”(12,12)고 하면서 오히려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켜라”(12,13)라고 권고했던 코헬렛은 진정한 신앙인이었습니다.

[평화신문, 2016년 2월 21일, 안소근 수녀(성 도미니코 선교수녀회, 대전가톨릭대 교수)]
[이 게시물은 스테파노님에 의해 2016-12-31 14:55:12 사랑방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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