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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칼럼] 한밤에 찾아온 손님
글쓴이 : 김형기 날짜 : 17-09-16 23:27 조회 : 269 추천 : 0
한밤에 찾아온 손님

밤늦게 예고 없이 손님이 찾아왔다. 그 손님은 한밤중인 한시 조금 지나 찾아와서 해가 뜨고도 한참 지날 때까지 떠나지 않아 밤새도록 한숨도 자질 못 했다. 그 손님이란 60년 가까이 나와 한 몸을 이루어 지내다가 사고로 떠나 보낸 내 왼쪽 다리다. 병원에서 퇴원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손님이 처음 찾아왔을 때는 놀랍기도 했고 반갑기도 해서 찾아오면 “너 어디 있었니?”라며 반가워하며 그가 갖고 온 ‘아픔’이라는 선물도 기꺼이 받아들였다. 처음에는 왼쪽 다리의 남은 부분을 들어 올리면 다시 찾아온 손님의 묵직한 무게도 느낄 수 있고, 통증이라는 신호로 몸 전체에 존재감을 표하는 게 신기했다. 그 신호란 게 환상통이다. 그렇게 환상통을 벗하며 지낸 게 10년 조금 넘었다. 처음에는 자주 찾아오더니 시간이 지나며 뜸해졌다. 요즈음은 1년에 두어 번 느닷없이 찾아와 반나절 정도 지내다가 간다는 말도 없이 슬그머니 사라진다.

환상통이란 절단된 부위에서 주로 발생하며, 절단 환자는 이 증상으로 고통을 많이 겪는다. 절단 환자 중에서 50%에서 80%가 이 증상을 경험한다고 한다. 해당 부위에서 불편한 증상이나 극도의 아픔까지 통증을 느끼거나 더위나 추위, 간지러움, 쓰라림 등을 느낄 수 있다. 없어진 부위에서 고통을 호소하니 모르는 사람이 보면 꾀병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고통을 느끼는 입장에서는 이만큼 황당한 것도 없다. 의사들이 기껏 처방하는 진통제는 듣지도 않는다. 그 때문에 환자는 환장할 노릇이니 환장통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른다.

고통이 너무 심해서 산통(産痛)과 비교되기도 하는 요로결석의 통증은 신선도 못 참는다고 선통(仙痛)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어느 지체 절단 환자는 환상통이 요로결석의 통증보다 더 견디기 어렵더라고 했다. 산통이나 선통을 겪어보지 못 한 나로서는 환상통을 이들 통증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칼로 찌르는 듯한 이 통증을 견디기가 매우 힘들다는 얘기밖에 할 수가 없다. 그 통증의 정도도 개인적인 차이가 있겠지만, 죽음에 이르는 고통이나 산모만이 체험할 수 있는 거룩한 고통인 산통과 비교할 생각은 감히 없다.

밤을 꼬박 새운 날 아침에 성당에 가는 차 안에서 다리에 영혼이란 게 있어서 한 몸을 이루었던 나를 가끔 찾아와 아픔을 호소하는 게 아니겠냐는 황당한 생각이 들었다. 아내에게 그 생각을 얘기했더니 아내는 크게 웃으며 “그럼 세상을 떠난 다리를 위해 연(煉)미사를 올려야 하겠네.”라고 했다. 그렇게 하고 싶은 생각은 굴뚝같았지만, 신부님이 그 말을 들으면 내가 정신이 나간 거로 생각할까 봐 꾹 눌러 참았다.

집으로 돌아와서 조선 순조 때 유씨 부인이 지은 고전 수필인 조침문(弔針文)을 찾아 읽으며 부끄러웠다. 조침문은 일찍 남편을 여의고 미망인이 된 그분이 자녀도 없이 바느질에 마음을 붙여 27년이라는 오랜 세월을 지내오다가, 어느 날 문득 바늘이 부러지자 너무나 애석하여 바늘을 의인화하여 자기의 슬픈 심회를 제문 형식에 맞추어 쓴 수필이다. “유세차(維歲次) 모년(某年) 모월(某月) 모일(某日)에 미망인(未亡人) 모씨(某氏)는 두어 자 글로써 침자(針子)에게 고(告)하노니……”로 시작되는 수필을 읽으니 문득 내가 무척 의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60년 가까이 나와 한 몸을 이루어 지내다가 나를 살리기 위해 떨어져 나간 다리가 쓰레기통에 버려져서 아무렇게나 처리되었음을 슬퍼한 적도 없었고, 가끔 환상통으로 찾아오는 그를 원망하기까지 했으니 나는 정말 인정머리가 없는 것 같다.

다리를 위한 연미사는 가톨릭 교리에 맞지 않으니 유씨부인을 본받아 조족문(弔足文)이라도 지어 올려서 떠나간 다리를 위로하면 환상통에 시달리지 않게 될까?
“모년 모월 모일에 김모는 두어 자 글로써 족자(足子)에게 고하노라. 인간사 흔한 일이 만나고 헤어짐이라 하나, 내 너와 함께 50여 년을 함께하다가 교통사고라는 날벼락으로 너를 떠나 보냈으니 심회가 남과 다름이라. 안타깝고 슬프다. 내 잠깐 눈물을 거두고 마음을 진정하여 너의 행장과 나의 심회를 총총히 적어 이별에 부치노라.” 애고, 눈물이 앞을 가려 더는 못 쓰겠네.

(2017년 8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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