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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칼럼] 알렐루야, 어머니 부활하셨네!
글쓴이 : 김형기 날짜 : 17-07-31 19:07 조회 : 327 추천 : 0
알렐루야, 어머니 부활하셨네!

20년 전 나이 80에 가까웠던 어머니가 미국에 방문하였을 때의 일이다. 이웃에 살던 P 신부의 어머니가 우리 어머니를 만나보고 나에게 걱정스럽게 말했다.
“어머니가 신앙심이 너무 없는 것 같아요.”
“왜 그렇게 생각하시지요? 성당에 오래 다닌 분인데요.”
“글쎄, 부활에 대해 말씀 드렸더니, ‘내 평생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걸 본 적이 없다.’고 하시던데요.”

적지 않은 목사님들이 공개적으로 육신의 부활을 부정하고, 저명한 가톨릭 신학자인 이모(李某) 신부도 “죽음으로 내 인생은 모두 끝난다. 다시 살아나는 삶은 없다”고 단언하며, 부활이란 죽은 자의 문제가 아니라 산 자의 문제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어 “죽은 자들이 가게 된다는 저승(천국이라 부르던 극락이라 부르던)을 나는 믿지 않는다”라며,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사후(死後)’는 ‘인생 다음’이 아니라 ‘인생 중’에 일어나는 사건이라고 믿는다.”고 공개적으로 발언하여 정통파 신자들의 비난을 받고 있다.

학식이 많은 분 중에서도 그런 분들이 적지 않은데 어머니야 가방 끈이 짧은 데다가, 전쟁 중에 아일랜드에서 오신 신부님 밑에서 밀가루 신자로 신앙생활을 시작한 분이니 심오한 부활 신앙을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게 어쩌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나는 그리 걱정하지 않는다. 성경을 보면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마태 5, 46) 라고 기록되어 있던데, 교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 하여 부활 신앙을 쉽게 받아 들이지 못 한다는 이유만으로 하느님이 어머니를 지옥에 떨어뜨릴 리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100세 가까운 고령이라 여러 해 전부터는 거의 매년 여름마다 병원에 입원하여 위기를 넘기면 또 그 다음 해 여름까지는 비교적 건강하게 지내는 게 연례 행사처럼 되었다고 한다. 얼마 전에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원주 여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목소리가 다급했다. 얼마 전부터 음식을 넘기지 못 하고, 눈을 뜨지 못 하고 의식을 잃은 모습이 예사롭지 않으니 이번에는 정말 세상을 떠나실 것 같다는 얘기였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바로 한국으로 떠날 수 없으니 한국에 전화로 안부나 물으며 며칠이 지났다.

전화로 들리는 여동생의 목소리가 나날이 평온해졌다. “주사기처럼 생긴 급식 관으로 유동식을 강제로 밀어 넣으면 드시기는 한다. 눈을 뜨셨다. 사람을 알아보신다.“ 그러더니 어저께 통화에서는 ‘말을 하신다. 죽을 드신다.”라고 했다. “알렐루야, 우리 어머니 부활하셨네.”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신부님에게 병자성사를 받고, 성당에 연락하여 장례준비까지 마쳤는데 기력을 회복하셨다니 부활하신 거나 다름없다. 죽고 나서 나흘이나 무덤 속에 있다가 다시 살아난 라자로와는 비할 바가 아니지만, 그래도 죽음 직전에 회복되었으니 우리 어머니도 부활한 거나 다름없다고 우겨 본다. 이런 걸 부활이라고 우기는 건 가톨릭 교리와는 거리가 먼 억지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우겨 본다. 거의 죽었다가 살아난 체험을 해 본 나는 그렇게 우길 권리가 있다고 믿고 싶다.

글 머리에 인용한 이신부가 한 말을 대개는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사후(死後)’는 ‘인생 다음’이 아니라 ‘인생 중’에 일어나는 사건이라고 믿는다.”라는 말에는 공감한다. 그렇게 믿는다면 우리가 살아가며 육신의 부활은 체험하기 어렵더라도 영적인 부활은 여러 번 체험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저세상 문턱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온 우리 어머니는 지금도 부활을 믿지 않을까? 어쨌거나 이번에도 위기를 넘긴 듯하니 사시는 김에 조금 더 사시다가 100세를 꽉 채우시게 되면 좋으련만.

(2017년 7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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