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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칼럼] 오베라는 남자
글쓴이 : 김형기 날짜 : 17-07-14 21:12 조회 : 360 추천 : 0
오베라는 남자

오랜만에 감동적인 영화 한 편을 보았다. ‘오베라는 남자(A Man Called Ove)’라는 스웨덴 영화인데, 주인공 오베는 반년 전에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59세 된 아저씨다. 그는 답답하리만큼 원칙을 고수하고 규칙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까칠한 남자다. 59세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80 넘은 노인보다 더 옹고집이다. 그리고 세상에 대한 불만이 가득해서 만나는 사람에게 적개심에 가까운 심한 분노를 터뜨린다.

나이 들었다고 무시하는 꽃 가게 점원, 불친절한 잡화점 아가씨, 이웃에 새로 이사와 매일 말썽 부리는 이란 여자와 스웨덴 남자 부부, 교사였던 아내의 제자였다며 신세 지려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젊은이, 평생 일한 직장을 예고 없이 떠나게 한 회사, 툭하면 트집 잡고 괴롭히는 공무원, 친한 친구였다가 배신한 이웃에 사는 부부 그리고 길고양이까지. 이들을 볼 때마다 그는 끝없이 잔소리를 늘어놓고 화를 내는 고약한 인물이다. 이런 아저씨를 한국 젊은이들은 개저씨라고 부른다던데.

영화를 보기 시작하며 ‘오베라는 남자’의 캐릭터가 ‘형기라는 남자’와 70% 정도 일치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거 참 재미있네.”라고 생각하며 영화에 집중하게 되었다. 나도 까칠하고, 옹고집이고, 융통성이 없고, 매사에 규칙 엄수를 부르짖으니 말이다. 첫눈에 반한 여자가 첫 데이트를 청하며 식당에서 만나자고 했는데. 여자가 약속 장소에 늦게 도착하자 그는 “당신 15분이나 늦었소.”라며 핀잔을 주고, 식사하는 내내 자동차 엔진에 관한 얘기를 화제로 삼는 게 내 모습 같았다. 나도 시간은 칼같이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젊었을 때는 여자 앞에서 재미 없는 얘기만 늘어놓았다.

주인공과 나를 동일시하며 영화를 계속 보다 보니 그와 내가 다른 점이 차츰 눈에 띄며 일치율이 50%, 30% 정도로 자꾸 떨어지다가 영화를 다 보고 나서는 15% 정도로 떨어진 것 같았다. 숫자가 아닌 말로 표현하면, “나처럼 고약한 아저씨네. 나보다는 좀 낫네. 보기 보다는 괜찮은 사람이야. 참 좋은 사람이었어.” 이렇게 생각이 바뀌어 갔다.

그는 가까이하기에는 너무나도 고약한 인물이지만,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을 끝까지 외면하지 않는다. 자신을 배신한 친구가 병들어 거동이 불편하게 되자 오랜 불화에도 불구하고 얼굴을 찌푸리고 툴툴거리면서도 그를 돕는다. 이상한 청년이 집에서 쫓겨나서 갈 곳이 없다며 찾아오자 마땅치 않아 하면서도 먹여주고 재워준다. 새로 이사 온 뻔뻔스러운 앞집 젊은 여자는 집 앞 잔디를 망쳐놓고, “사다리를 빌려달라, 병원에 데려다 달라, 아이들을 봐달라, 운전을 가르쳐 달라, 길고양이를 보살펴라.”라며 끊임없이, 그것도 당당하게 요구하며 괴롭히지만, 오베는 그때마다 언쟁을 벌이면서도 하는 수 없이 받아들인다. 이런 점이 바로 그와 내가 다른 점이다. 나 같으면 절대로 그런 밉상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겠다.

아내가 암으로 죽자 오베는 매일 꽃을 사 들고 묘지를 방문하여 “나도 곧 당신 있는 곳으로 가겠소.”라고 약속하며 그걸 실행에 옮기려고 열심히 노력한다. 그런데 자살 시도는 늘 실패로 돌아간다. 천정에 튼튼한 밧줄을 묶고 목을 매달았는데 그만 끊어져서 첫 번째 시도는 실패. 더 튼튼한 밧줄을 구해서 목을 매달려고 하는 찰나에 새로 이사 온 앞집 여자가 사다리를 빌려달라며 문을 두드리는 바람에 포기. 자동차 배기가스 중독 자살을 시도하는데 또 앞집 여자가 병원에 데려달라며 차고 문을 두드려서 하는 수 없이 포기. 기차에 뛰어들어 죽으려는데 낯선 사람이 선로에 떨어져서 그를 구하느라 자살 미수. 총으로 자살하려는데 이상한 청년이 문을 두드리며 좀 재워달라는 바람에 실패. 죽는 게 이다지도 어려운 건지.

다가오는 이웃을 뿌리치지 못하고 도와주면서 그들에게 마음을 열게 되고, 새로 이사 온 이웃과는 가족처럼 가까워지는데 눈 내리는 날 밤에 심장마비로 홀로 숨을 거둔다. 며칠 후 교회에서 열린 장례식에는 그에게 도움 받은 사람들이 모여서 그의 죽음을 애도한다. 이리하여 “곧 당신 곁으로 가겠다.”는 그의 약속은 지켜졌다.

스웨덴 영화로는 잉마르 베르그만(Ingmar Bergman, Ingrid Bergman의 남편) 감독의 유명한 작품 몇 개를 본 적은 있었어도, 현대 영화를 본 건 이 영화가 처음이다. 스웨덴이라고 하면 아득히 먼 나라이고 그 나라 사람은 뭔가 우리와는 다른 사람일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이 영화를 보니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다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남녀 간의 사랑,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갈등, 도움 주고받기, 이런 게 어디에나 있는 거지 뭐,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가 아닌가?

누군가 정신 나간 사람이 있어서 ‘형기라는 남자’라는 영화를 찍으면 ‘오베라는 남자’ 같은 감동을 담을 수 있을까? “아서시오. 무미하고도 건조한 영화를 누가 돈 내고 본담. 망할 각오가 없거들랑 그런 생각일랑 접으시오.”

(2017년 7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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