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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칼럼] 여기가 어디일까?
글쓴이 : 김형기 날짜 : 17-06-24 18:30 조회 : 364 추천 : 0
여기가 어디일까?

내 교통사고 기념일이 다가온다. 이번 6월 27일은 12주년 기념일인가 보다. 오랜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서 정신이 오락가락한 탓도 있었지만, 당시에는 살아 있어도 죽은 거나 별반 다를 바 없는 그러한 상황이 무척 혼란스러웠다. 성대가 망가져서 말 한마디 못 했고, 물 한 모금 넘기지 못 하는 것도 사실로 받아들이기 어려웠지만, 절단된 왼쪽 다리와 여러 곳이 부러져서 쇠막대기로 얼기설기 엮은 채 깁스한 오른쪽 다리가 천근만근 무거워서 몸을 좌우로 돌리지 못 하고 하루 종일 반듯하게 누워서 지내야 하는 게 큰 고역이었다. 교통사고 이후 일어난 일을 기억하지 못 해서 모든 게 혼돈상태였다.

여기가 어디일까?
우리 집은 아닌 것 같은 데, 여기가 도대체 어디일까? 우리 집은 어디일까? 머리에 떠오른 우리 집은 좌우로 나무가 늘어서 있었고, 잘 손질 된 잔디가 인상적인 깔끔한 이층 집이었다. 주위의 집들도 우리 집과 비슷한 크기에 비슷한 모양인데 참 조용한 동네였다. 어디에선가 본 듯한 집이었지만 왜 그 집이 우리 집이라고 머리에 떠올랐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병원에 입원해서 누워있다는 사실도 며칠 지나서 알았다.

오늘이 며칠일까?
오월 어느 토요일 밤에 성당에서 성모의 밤 행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던 길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 이후의 일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사실은 6월 27일 주일 낮에 수도원에서 열린 성당의 야외행사에 참석한 나음 날에 사고를 당했는데 내 시간은 그렇게 사고 한 달 전에서 멈춰있었다.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게 8월 말이었으니 사고 후 두 달이 흘렀는데, 그 시간 간격을 메울 수 없어서 혼란스러웠다. 그 두 달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단 말인가?

나는 누구인가?
의식을 찾자 정신과 의사가 거의 매일 찾아와서 같은 질문을 되풀이해서 던졌다.
“이름이 무엇이요?” “김형기입니다.”
“집 주소는?” “잘 모르겠습니다.”
“전화번호는?” “생각나지 않습니다.”
“나이는?” “마흔 여섯입니다.” 사실은 쉰여섯 살이었는데 매번 마흔여섯이라고 대답했으니 그걸 보는 가족의 가슴은 무너지는 듯했을 거다.

물을 때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서 쌕쌕거리는 헛바람 소리만 내었는데도 경험 많은 의사는 무슨 말인지 대개는 알아 듣는 것 같았다. 때로는 공책에 대답을 쓰라고 했지만, 오래 사용하지 않은 근육은 무력해져서 볼펜 한 자루 잡기도 힘겨웠다. 그렇게 간단한 질문에 대답하기도 힘겨워서 때로는 답변을 거부하고 침묵을 지키기도 했다. 이 남자는 누구길래 나를 찾아올 때마다 이런 질문을 하는지 의아했고, 그를 볼 때마다 짜증스러웠다. 시간이 좀 지나서야 하얀 가운을 입은 그가 의사라는 걸 알았다.

내가 답변을 제대로 못 하면 옆에 있던 가족이 바른 대답을 가르쳐 주며 잃은 기억을 되살려 주려고 애썼다. 병상 옆 벽에는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이 잔뜩 붙어 있었는데 기억을 되살리는데 도움을 주려고 아내와 딸이 붙여 두었겠지만, 처음에는 그게 무슨 사진인지도 알 수 없었다. 그렇게 3주 정도 지나서 기억이 많이 돌아오기는 했지만, 그래도 기억나지 않는 게 많아서 답답했다. 신기하게도 사고 전에는 잊고 지낸 어릴 적 기억이 하나씩 둘씩 떠올랐다. 부모, 형제, 초등학교 때 친구들……그리고 고향에서 지내던 즐거운 추억이 떠올랐다. 느닷없이 친구들 얼굴과 이름이 기억나서 오래 전 기억의 창고 문이 열리는 것 같았다. 몇 달이 지나서 잃었던 기억도 돌아오고, 의료진이 걱정했던 거와는 달리 뇌 기능도 정상으로 돌아오고……그 이후의 일은 내가 쓴 다른 글에 나오는 대로다.

정신이 거의 돌아오자 “사람이 참 어이없이 저 세상으로 갈 수도 있구나. 죽는 것도 사는 것도 정말 별거 아니구나. 내 목숨이 내 것이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에 빠졌다. 그렇다고 심오한 철학적 사유에 빠진 게 아니라 구멍 뚫린 배에 연결된 급식튜브를 통해 죽지 않을 정도로 공급되는 유동식으로 연명하며, 온종일 쉴새 없이 터져 나오는 기침에 고통스러워하며 그저 동물적인 본능으로 헐떡거리는 게 고작이었다.

그 이후 10여 년 장애인으로 살아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산다는 게 매우 불편하다. 어떻게 불편한 지 설명한들 이해하기 어려울 테니 “장애는 극복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적응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더라.”는 말로 대신한다.

사고를 겪고 이렇게 지내며 신앙이 어려움을 이겨내는데 큰 도움이 됨을 느낀다. 내가 신앙심이 깊어서가 아니라 정말 견디기 어려울 때에 원망할 수 있는 대상, 매달릴 수 있는 대상이라도 있다는 게 다행스럽더라는 얘기다. 지금부터는 ‘라 로슈푸코’가 남긴 다음 말을 가슴에 품고 살며 현명하게 살고자 한다. 아니, 현명한 사람이라는 말을 듣지 않더라도 이제부터는 부디 평온한 일상이 지속되기를 하느님께 빌어본다.

“근본적으로 행복과 불행은 그 크기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서 작은 것도 커지고, 큰 것도 작아질 수 있는 것이다. 가장 현명한 사람은 큰 불행도 작게 처리해 버린다. 어리석은 사람은 조그마한 불행을 현미경으로 확대해서 스스로 큰 고민 속에 빠진다.”

(2017년 6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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