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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칼럼] 혼수상태에 빠져 보니
글쓴이 : 김형기 날짜 : 17-06-19 09:41 조회 : 337 추천 : 0
혼수상태에 빠져 보니

날벼락 같은 교통사고로 오랫동안 혼수상태에 빠진 적이 있었다. 사고 직후에 많은 출혈로 바로 의식을 잃은 상태로 병원에 실려 가 입원해 있는 동안에 다리 하나를 절단하고, 처참하게 망가진 몸 여기저기를 꿰매고, 기우고 때웠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사고 후 한 달이 지났다고 했다. 그리고 하루인가 이틀 지나서 다시 심장이 멎고 호흡에 문제가 있어서 심폐소생술을 받고, 기도를 절개하여 인공호흡기를 연결한 상태로 혼수상태에 빠져 있다가 다시 한 달 만에 의식을 되찾았다.

“의학사전에는 혼수상태(Coma)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혼수상태(昏睡狀態)는 의학에서 깊은 의식불명 상태를 말한다. 혼수상태에 있는 사람은 깨울 수가 없고 일반적으로 고통이나 빛, 소리 등에도 반응하지 않는다. 또한, 건강한 사람과 달리 깨어 있는 상태와 수면 상태의 주기적 전환이 발생하지 않으며, 자신의 의지로 움직이지도 않는다.”

자연적 혼수상태에 빠진 처음 한 달 동안에 여러 차례 큰 수술을 받고 생사를 넘나들었어도 그 당시에 일어난 일은 기억나는 게 없다. 나의 사고 소식을 듣고 로스앤젤레스에서 작은딸이 급히 달려왔고, 큰딸 내외가 거의 매일 병원을 찾았고, 많은 분이 병실을 찾았다는 사실도 전혀 모른 채 깊은 잠에 빠진 것처럼 한 달이 지났다. 두 번째 혼수상태는 의료진이 치유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 인위적으로 혼수상태에 빠지게 한 건데 의학사전에는 그걸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의학적으로 인위적 혼수상태(Induced Coma)란 마취제를 투여 받고 일시적 혼수상태나 무의식상태에 있는 것을 이른다. 뇌가 팽창하여 다른 의학적 치료에 반응하지 않는 뇌 손상 환자를 인위적 혼수상태로 둔다. 뇌가 팽창하면 혈류를 위축시키고 추가로 뇌 조직을 손상할 수 있다. 의학적으로 인위적 혼수상태나 깊은 무의식 상태에 있는 환자의 뇌는 진정되어 팽창이 감소한다. 그러면 뇌압도 감소하여 뇌 일부 또는 전체 손상의 방지를 기대할 수 있다. 인위적 혼수상태는 외상이나 질병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서도 사용된다.”

두 번째로 혼수상태에 빠진 한 달 동안에는 주위의 상황을 어느 정도 느끼고 있었던지 나중에 긴 잠에서 깨어나 보니 잠에 빠진 동안의 일이 참 많이 기억난다. 그 기억과 나중에 가족에게서 들은 당시의 상황을 비교해 보면, 실제 상황을 그대로 기억하는 건 아니고 많이 왜곡되거나 일부만 걸러진 상태로 기억하지만, 분위기는 대체로 비슷하게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었다. 달리 표현하면 내 두뇌는 당시의 상황을 이것저것 질서 없이 마구 뒤섞여 갈피를 잡을 수 없는 혼돈(混沌)상태로 인식했던 것 같다. 기억나는 걸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혼수상태에서 깨어나기 직전에는 작고 예쁜 성당 안에서 정장을 한 상태에서 발돋움하고 유리창을 통해 바깥을 내다보고 있었는데 두 다리가 멀쩡해서 안도했다.
아름다운 야생화가 가득 핀 야산을 두어 차례 걸었는데 나중에 깨어나 생각하니 유년기를 보낸 고향 집 앞 야산인 것 같았다.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는 젊은 남자 목소리가 여러 차례 들렸다. 나중에 들으니 가족들이 가끔 내 귀에 대고 그렇게 말했다는데, 영어만 쓴 큰사위가 “I love you, dad.”이라고 말한 걸 한국어로 번역해 들은 듯하다. .
바람이 세차게 부는 몹시 흐린 날에 잡목만 가득한 산을 오르며 몹시 암울해 했다.
그리고 민망한 얘기지만, 배설과 성행위에 관한 환시. 참 본능은 끈질기기도 하다.

오랫동안 혼수상태에 빠져본 내 체험에 비추어 보면 깊은 잠에 빠진 것 같은 환자도 들을 건 다 듣고 불완전하지만, 주위상황을 나름대로 인식한다고 믿는다. 그러니 환자 앞에서는 늘 밝고 긍정적인 얘기를 들려주고, 문병객이 찾아오면 그들에 대하여 설명도 해주고, 아름다운 음악도 들려주며 환자의 마음이 편안해 지도록 배려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2017년 6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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