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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칼럼] 일생현명(一生懸命)
글쓴이 : 김형기 날짜 : 17-06-08 01:40 조회 : 367 추천 : 0
일생현명(一生懸命)

20대 중반에 일본어 공부에 몰두한 적이 있었다. 전자회사에 입사하여 회사의 특허부서에서 일했는데 당시 기술 제휴한 회사가 일본에서 손꼽히는 전자회사였고, 회사의 기술 수준이라는 게 일본 회사의 제품을 그대로 베끼는 정도였으며, 한국의 특허 관계 법령도 일본 것을 그대로 번역해서 쓸 때였다. 매일 대하는 특허 자료도 대부분 일본어로 작성된 것이라서 일본어 습득은 업무에 꼭 필요했다. 일본과의 기술 차이가 너무나 커서 하루빨리 일본을 따라 배우자는 분위기여서 내가 일본어 공부하는 걸 민족의 자존심을 내세워서 비웃는 사람은 주위에 없었다.

독학으로 틈틈이 일본어를 공부하던 어느 날 교재에서 '잇쇼겐메이(いっしょうけんめい)'라는 표현을 보았다. 잇쇼(いっしょう)는 일생(一生)이니 살아 있는 동안이라는 뜻이고, 겐메이(けんめい)는 현명(懸命)이니 목숨을 내건다는 뜻으로서 교재에는 “일생현명(一生懸命), 목숨을 걸고 죽을힘을 다해서 열심히 한다는 의미.” 라고 풀이했던데, 하나밖에 없는 목숨은 한 번밖에 걸 수 없으니 평생 목숨을 건다는 표현이 이해되지 않았다. 짧은 한문 실력으로 보기에는 사자성어도 아니고 그저 어설프게 짜 맞춘 조어(造語) 같았다.

사무라이는 싸울 때마다 지면 바로 죽음이니 싸울 때마다 목숨을 걸 수밖에 없다. 그들은 길지 않은 삶에서 매 순간 목숨을 걸 수밖에 없으니 일생현명이라는 조어도 아마 사무라이에게서 나온 게 아닐까 싶었다. 이 말이 널리 쓰이며 ‘목숨을 걸고 죽을힘을 다해서 열심히 한다.’는 의미로 쓰이게 되었거니 짐작했다.

그런데 나는 이 나이가 되도록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내 목숨을 걸고 죽을 힘을 다해 열심히 해 본 적이 있을까?

대학 시절에 한때 열심히 공부한 적은 있었으나 장학금을 계속 받는데 필요한 학점 유지에 급급했으니 죽을 힘을 다해 공부했다고는 할 수 없다.

사랑에 목숨을 걸었던가? 시골 출신 촌뜨기는 여자 앞에서는 늘 허둥대기만 했지 여자의 마음을 얻는 데는 늘 서툴러서 목숨 거는 방법도 몰랐다.

재물을 쌓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가? 조금 부족하게 사는 삶에 익숙했고, 넉넉한 재물을 탐내지 않았으니 청빈낙도의 삶을 살고자 한 셈이었다고 강변해 보지만, 내 무능함을 포장하는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직장에서 승진에 목숨을 걸었던가? 열심히 일하기는 했지만, 처세에 어두워서 승진도 위에서 시켜주면 기뻐했고, 남보다 뒤처져도 서운하기는 했지만, 상사에게 잘 보여서 승진하는 걸 치사하게 여겼으니 조직사회에서 성공하기는 그른 성격이었다.

신앙에 목숨 걸어 본 적이 있었던가? 순교는커녕, 간직한 신앙심도 그리 깊지 못 하여 이런 일에 흔들리고 저런 일에 흔들리니 천국 가는 길은 아득하기만 하다.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하고 살아 날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을 때 제발 나 좀 살려 달라고 하느님께 간절히 매달렸다. 그때 하느님께서 내 애원을 들어주시지 않았더라면 내 목숨을 구하지 못 했을 테니 그야말로 목숨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기도했던 셈이다.

앞으로 살아있는 동안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내 목숨을 걸 일이 있을까? 일생현명이라는 살벌한 표현을 좋아하지도 않지만, 그렇게 죽기 살기로 매달릴 일은 없기를 바란다. 내 나이가 몇인데, 평온하게 살다 가야지.

(2017년 4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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