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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칼럼] 애잔한 그의 이름 '도마', 서른 한살 에 떠나간 안중근--전경택 미카엘
글쓴이 : 사무실 날짜 : 17-05-14 09:33 조회 : 435 추천 : 0
애잔한 그의 이름 '도마', 서른 한살 에 떠나간 안중근

작년에 아들과 함께 한국 영화 '암살'을 에지워터에 있는 미국 극장에서 함께 보았다. 한국말도 잘 못하는 우리 아들 꽤 심각하게 관람하더니 만 혹시 영화 속 내용이 역사적 사실인가 궁금해했다. 영화는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제작됐지만 실제 그 비슷한 사건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하얼빈에서 일어난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암살 사건이라 얘기 해줬다. 그 짧은 설명이 조은숙 자매님이 참가를 권유해 아들이 참가한 제7회 경운 장학 웅변대회 주제가 될 줄은 정말 몰랐다.
그래서 아들 녀석 원고도 도와 줄 겸 역사책을 다시 꺼내 보았다. 다시 살펴본 역사 속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암살사건은 여러가지 의문을 내게 던져 주었다. 예를 들어 그는 16살에 결혼하여 2남1녀를 둔 한 집안의 가장인데 왜 가족을 등지고 암살을 생각했을까 하는 의문이다. 물론 그의 불타는 애국심이 있었기에 그런 결단이 가능했겠지만 흥미로운 건 예전엔 잘 몰랐지만 그는 사냥에 능한 훌륭한 포수였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의 아버지는 진사를 지낸 유교 학자 였지만 천주교에 입교한 이후 아들과 사냥도 즐겼고 안중근은 학문에 능하기 보단 소총 사격에 재능을 보인 듯 하다. 생각해보면 자동 소총으로 이동중인 히로부미의 몸에 세발 다 명중 시킬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타고난 사격수였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 본다. 또한 그가 세운 삼흥 학교와 돈의 학교는 그의 숨겨 논 학문에 대한 미련 때문이었 을지 모른다고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그가 교육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은 1905년 중국 상해에서 만난 불란서 사제 르각 신부가 강조한 교육의 중요성에 더 영향을 받은 듯하다. 그 당시 불란서와 천주교 신부는 문명화의 상징적 존재임을 감안한다면 안중근이 르각 신부의 말을 얼마나 소중히 여겼음을 상상하기란 그다지 어렵지 않을것같다. 불행이도 한국으로 돌아와 교육에 헌신하겠다던 그의 꿈은 그 당시 천주교 조선 교구장이었던 불란서 신부 뮈텔 주교에 의해서 무참히 좌절되고 만다. 교회의 도움으로 대학을 세우겠다는 안중근에게 뮈텔 주교는 "한국인들이 만약에 학술과 문학을 가지게 되면 종교를 믿는 것에 좋지 않으니 또다시 이와 같은 말을 내어 놓지 마시오.(뮈텔 주교 일기)"라고 말했다 한다. 이분은 나중에 안중근에게 당신의 뜻을 거스르고 고해성사와 성체성사를 베푼 빌렘 신부를 독일로 추방 시킨다. 빌렘은 안중근을 천주교에 입교 시키고 세례까지 주신 바로 그분이다. '도마(Thomas)'라는 세례명을 받은 안중근은 빌렘 신부의 선교활동을 열심히 도왔다고 한다.
그래서 생각해 보았다. 안중근이 만약 사격술에 능하지 않았다면 또한 뮈텔 주교가 그를 도와 대학을 만들었다면 과연 그가 가족을 등지고 하얼빈에서 히로부미에게 총구를 겨누었을까? 아마도 그는 그런 조건들이 충족 됐다 해도 똑같은 선택을 했으리라 본다. 왜냐하면 그가 받아들인 천주 신앙은 공의로움과 천명의 존귀함 그리고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끝없는 사랑을 그로 하여금 절실히 깨닫게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진정한 천주인 이었기에 그를 마구 두를겨 패고 심지어는 노인들에게도 손찌검을 한 빌렘 신부, 주교 지시를 어기면서 까지 사형직전의 '도마'에게 성체 성사를 베풀어 주면서도 안중근에게 따뜻한 사제의 모습보다는 그의 행동을 단죄하는 빌렘 신부에게 진심을 담아 마지막 편지를 보내진 않았을 것이다.
안중근에겐 이토 히로부미는 하나님의 명을 어기고 근대화란 명분으로 힘없는 나라를 차지하려는 의롭지 않은 식민 지배자들의 상징 이었고 그래서 안중근은 그 서글픈 인간들의 양심에 총부리를 겨누었을 것이다. 또한 천주교인 이었던 '도마'의 어머니는 사형수가 된 아들에게 직접 만든 옷을 주면서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하지 말고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고 당부했다 한다. 그의 굳건한 신앙을 확연하게 보여주는 또 다른 증거이다.
연습도 제대로 하지않고 3등 했다고 실망해서 쭉 말이 없는 아들과 집으로 돌아 오면서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났다. 왜냐하면 나는 오늘을 살아가는 애잔한 '도마' 안중근들을 그날 만났기 때문이다. 수십년전에 미국으로 건너와 온갖 장애를 극복하고 타국 땅에서 우뚝 서있는 경운장학회 모든 분들, 그들 때문에 미국인 이면서도 자신들에게 가해지는 차별에 분노보다는 뜨거운 외침의 소리로 애잔한 미국의 현실을 극복해가고 있는 16,17살 짜리 아이들의 의연함.
그건 아마도 애잔했던 '도마' 안중근의 기개와 당당함이 아직도 그들의 핏줄속에 도도히 흐르고 있기 때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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